언젠가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이 사람 보는 눈이 좋아서 이런 색시를 얻었다." 아내는 나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해 주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되었다. 불안정하던 삶이 아내를 만나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인성이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는 가치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아름답게 바라보는 부부. 아버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보고 웃고 계셨으면 한다.
평화로울 땐 불안도 오겠구나. 괴로워도 또 행복이 오겠구나.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너무 슬픈 일과 너무 기쁜 일의 경계가 많이 사라졌다. 세상은, 자연은, 내 마음은, 지금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생동하는 큰 흐름 안에서 모든 만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면 그저 경건해진다.
스트레스와 불안의 원인인 '스몰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스트레스와 불안의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접근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스몰 트라우마는 스트레스와 불안 양쪽 모두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과거의 경험이 특정 상황에서 스트레스 반응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몰 트라우마는 또한 우리의 인지에 영향을 끼쳐 불안을 유발하고 정신적으로 수많은 토끼 굴을 파게 하며, 그 결과 스트레스 반응과 다른 생리적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인간 신체의 구조에서 갈레노스가 그 존재를 입증했듯이, 그토록 균형 잡히고 아름다우며 유용한 요소들의 결합체인 신체를 확인하려면 상당한 지성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몸은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몸의 제작자를 기적을 행하시는 분으로 규정하는 일은 당연하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통 잘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 공감 잘하기로도 따라갈 사람이 없다. 상대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발음으로 이상하게 말해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끄덕여준다.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들어주는 모습, 세상에 이보다 즐거운 일은 없다는 표정으로 상대에게 눈을 떼지 않는다. 엉터리 같은 상대의 말을 알아듣고는 제대로 다시 들려주기도 한다. 짐작했을지 모르겠다. 바로 어린아이의 부모다. 어린아이와 대화하는 부모를 보라. 소통의 대가, 대화의 귀재라는 말로도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