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나 보복 대신 용서와 화해의 길을 택한 넬슨 만델라의 결단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27년간이나 비인간적인 감금 생활을 겪었는데도 개인적인 원한을 접었다. 흑인들에게 무자비하게 아파르트헤이트를 자행한 백인들을 처단하지도 않았다. 만델라의 용서는 보복이 또 다른 보복을 불러오는 불행을 막기 위한 정치적인 결단이었다. 미래를 위한 용서였다. 그래서 그의 용기와 포용은 위대하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원정에 나서기 위해 시간을 들여 준비하는 게 당연히 해야 할 일처럼 보이지만 놀랍게도 꽤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을 건너뛴다. 등반이라면 나도 남부럽지 않게 해봤는데 눈 속에서 죽음을 맞은 탐험가들의 끔찍한 사연이 들려올 때마다 알고 보면 필수 장비를 준비하지 않았거나 기상 정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나이를 먹으면서 바뀌는 것이 어디 한둘이랴 마는, 해가 갈수록 주변에서 듣게 되는 고민의 내용이 심각해진다는 점을 유독 실감하게 된다. 천성인지 학습된 성향인지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나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누가 하소연하면 대책은 시원스레 마련해 주지는 못할지언정 성심껏 들어는 준다.
생각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그것은 흐르는 물이나 공중의 대기처럼 혹은 바람에 흩날리는 풍선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생각의 특징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생각, 즉 잡념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 생각은 인간의 감정, 지성 그리고 '나'라는 이기적인 자아가 실제의 삶에서 만들어낸 복잡한 결과물이다.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소통이 되지 않아 힘들었다.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평생 아버지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시간은 아마도 다 합쳐도 2시간 분량도 안 될 것이다. 아버지와 나는 굉장히 어색한 부자 사이였다. 아버지가 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경상도 출신인 아버지는 아들과 대화하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다.
결국 나를 글쟁이로 만든 것은 고난의 경험이었다. 글의 재료는 행복한 시간보다 불행한 시간, 고난의 시간에 만들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재수 없는' 시간, 일생에서 가장 재수 없는 저점의 시간에 만들어진다. 사람을 믿었다가 한순간에 똥통에 빠진 그 재수 없는 시간이 나를 독서가로 만들었고, 고되고 힘들었던 고난이 나를 글쟁이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