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왜
이런 몸으로 태어났을까?"라는
궁금증은 지금도 거울을 볼 때마다 계속된다.
하지만 이제 그 뉘앙스가 달라졌다.
"이런 몸으로 태어나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와
같은 질문으로 바뀐 것이다.
- 김혜령의《불안이라는 위안》중에서 -
텍사스양 고도원의 아침편지